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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Count: 3018 11/09/13
제 26강 03/01/09 부지중에 천사 대접(창 18:1-8)

히브리서 13:2절에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하면서,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거기에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짐작 컨 대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인줄 알고 대접한 것뿐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천사였다. 이것은 비단 아브라함 뿐 아니라, 우리도 반드시 경험해야 할 사건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 보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 특별히 교회의 직분자들의 자격과 삶의 자세를 말할 때,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대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면, 황금과 같이 귀한 계명이라는 뜻으로 황금률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난 한해동안, 밥 한끼, 차 한잔이라고 남을 대접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한 번 이라도 여러분 집에 손님을 청한 적이 있습니까?

  한 해가 다 가도록 손님한 번 청한 적이 없고, 밥한 끼 대접한 적 없다면, 그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금년에는 꼭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옆사람을 보시면서, “집사님 금년에는 밥한끼 대접하겠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점심을 먹고나서 장막 문 앞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낫선 사람 셋이 건너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손님들을 정중히 잘 모시고는 맛있는 요리로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과 천사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인들로서, 왜 나그네를 대접해야하는지, 또 어떤 자세로 그들을 대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주님을 대하듯 겸손히 대해야 합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아브라함을 찾아온 나그네는 세 사람이었습니다. 왜 하필 셋일까요?여러분, 혹시 직감적으로 어떤 분들이라고 짚히는 것이 없습니까?

  혹시 성부, 성자, 성령 삼위하나님이 아니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두 천사를 대동하고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이 하나님과 천사들인지 몰랐습니다. 지나가던 길손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이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본문 3절에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아브라함이 나그네에게‘내 주여’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 ‘아도니’라는 단어가 쓰여졌습니다.아도니는 Lord, 주라는 뜻인데,하나님에 대한 명칭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주님처럼 대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 마지막에 보면, 그들을 보자마자 달려 나가 영접을 합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몸을 땅에 굽혀’ 거의 예배하는 자세로 그 나그네들을 영접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23절에도“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남편이나 아내를 대할 때도 주께 하듯, 어린 아이를 대할 때도 주께 하듯, 성도들을 대할 때도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할 때도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예수님의 제자 40일 캠페인 소그룹 모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되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주님을 대하듯 하시기 바랍니다. 말한마디 행동하나도 겸손하게, 부엌에서 봉사하는 것도, 주님께서 내게 맡기셨으니 주께 하듯 하십시오, 옆 사람을 보시면서. “집사님,주께 하듯 섬기겠습니다. 집사님,겸손히 섬기겠습니다.”

  평안북도 정주의 한 동네에 아주 똑똑한 청년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집안이 가난하여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았습니다. 모든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그 머슴의 자세를 지켜본 주인이 머슴살이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비를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드디어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오산학교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조만식장로님이십니다. 그는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비결을 물을 때마다, 이렇게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 즉 작은 일에 충실하여 겸손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도 미국 와서 한 십년가까이 요강닦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이정도나마 겸손해진 것은 요강닦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하십시다. “요강을 닦읍시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한 짐승입니다. 아침이 되면 등에 짐을 실기 위하여 주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루가 끝나 저녁때에는 등에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리기 위해 주인 앞에 무릎을 끓습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짐을 지어 주십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지워주시는 짐을 어떤 모습으로 받으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새에게 날개는 무겁지만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지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인앤 아웃 햄버그를 좋아합니다. 인앤아웃 햄버그의 컵에 보면, 요한복음 3:16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In and Out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신다는 신명기 28:6절의 말씀에 근거해서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 잘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시간 저는 여러분의 가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복을 받고 나가는 In and Out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섬기는 일은 성령님이 감동주실 때 즉시 실천해야 합니다.

  작은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라는 저희 가정의 간증집 책을 읽으신 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희귀병에 걸린 어떤 목사님의 사모님이 계셨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저희부부는 어떻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다가, $500정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형편에 500불은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300불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300불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두달이 지난, 어느날 아침에 일을 나가면서 제가 아내에게 100불이라도 가지고 가자고 했습니다. 제아내도 “번복하기 없기야,”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날 일을 나갔다가, 볼일이 있어 가주 마켙옆에 있는 세탁소에 들렸다가 나오는데, 그 사모님의 초라한모습이 내 눈에 들어오면서, 어디선가 “야, 임마 한번 봐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령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목숨을 주었는데 너는 병든 이웃을 위해 하루도 줄 수 없더냐” 하루란 말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면 벌수 있는 금액이 2백불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길로 은행에 갔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750불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구좌에는 400불이 전부였습니다. 언제나 잔고가 모자라기 때문에 혹시 부도날까 싶어, 체크로 십일조를 못하고, 캐시를 찾아 드리곤 했습니다.

  십일조로 200불을 제해놓고, 200불을 들고, 그 사모님댁으로 찾아갔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을 살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살수는 있지만 입맛을 살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어 김치 하나 놓고도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게 축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좀 힘들어도 헐벗고 가난한자로 찾아오신 주님을 섬기는 것이 행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날 그 사모님 댁에 심방 갔다 오는 그 기쁨을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파트 렌트비가 없습니다. 잔고도 없이 750불 체크를 끊어 주인에게 보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은행으로부터 잔고가 모자란다는 연락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 주인이 어디 출타해서 입금을 늦게 시켰나보다.

  그런줄 알고 있었는데, 은행에서 Statement가 왔는데 보니, 난데없이 750불이 입금이 잡히고 렌트비가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닙니까? 송금해 준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무슨 조화인지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하나님만 아시는 사건입니다.

  성령님이 감동주시면,즉시 실천해야 합니다. 구제든 선교든,반찬 하나라도 성도들 대접하고 싶은 생각이 나면, 그것이 성령님의 감동인줄 알고 그 주일 즉시 하십시오,

구제든 선교든 십일조든성령님이 감동주시는데도 아까운 생각에 못하면, 그게 저축될까요? 아니요. 반드시 엉뚱한 일이 생겨 다 날아가버립니다. 제 경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십시다. 본문 2절에 달려나가 영접하면서 제발 내 집에 쉬었다, 가라고 간청을 합니다. 본문 6절에는, 급히 장막으로 들어갑니다. 속히 가루를 가져다가 아내에게 떡을 만드라고 재촉합니다. 7절에도, 달려가서 송아지를 잡습니다. 급히 요리를 해서 대접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두 천사가 찾아온 줄 몰랐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께 하듯 대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령님의 감동주시는 대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즉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알지 못하고 대접한 일이 하나님을 대접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하나님이 왜 두 천사를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을까요? 본문 15절이하에 보시면, 99세된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수태고지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내주위에 있는 가난하고 헐벗고 병들고 상처 입은 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잘 대접해서, 아브라함처럼,

  부지중에 주님과 천사를 대접하는 놀라운 사건들을 경험하시기를 바라고, 그 일로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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