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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28, 2024 2월 28일 열방을 심판하시는 공의의 통치자
    본문 :  요엘 3:1-13 본문에서는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심판의 이유와 심판의 정의로움이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방 민족을 심판하시는 이유(1-3) 하나님은 정하신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회복시켜서 번영케 하는 반면에 모든  민족을 모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려가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에게 저지른 일 때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세계의 여러  민족으로 흩어 버렸고 땅을나누어 가졌기 때문이며 제비를 뽑아 그 남은 백성을 나누어 가지고 소년을 팔아 창녀를 사고 소녀를 팔아 술을 사서 자신들의 향락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고귀한 인격을 한낱  노리개 감으로 전락시킨 중대한 범죄이며 더 나아가창조질서를 벗어나 변태적 방법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심각한 타락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죄로  인하여 온 형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의가혹한 행위를 용서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받는 학대에 분노하시며무서운 진노를 내리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악인을 심판하며 온 민족을 공의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공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헤아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믿고 있습니까?이방 민족들에게 행한 대로 보복하심(4-6)  요엘은 유다의 대표적인 적 두로, 시돈,블레셋 등을 책망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대로 보응하시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약해져 있을  때 별 명분없이 침략하여 금, 은, 온갖보물을 빼앗고 탈취했으며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헬라 족속에게 매매하여 가족들이생이별하게 하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인권을 짓밟아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자신들의 죄와불순종으로 인하여 이방인들에게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은 자신과 이스라엘을 일치시키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고난을 당하거나 징계를당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믿고 있습니까?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정의로움(7-8) 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적절합니다. 여호와는 흩으셨던 백성을  모으시고 그 이방 나라들을 노예로 만드실 것입니다. 유다는  두로와 시돈 그리고 블레셋의 아들과  딸들을 먼 나라 스바인(오늘날은 예멘 지역의 사람)들에게  팔 것입니다. 이 심판은 부분적으로는 B.C.4세기 경에 성취되었습니다. 시돈 사람은 B.C.345년 안티오커스 3세가 노예로 팔았습니다. 두로는 알렉산더가 332년에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이 그 일에 깊이 관여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민족을 심판하는 전조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적절하고 정의롭다고 확신하고있습니까?열국에게 전쟁을 요청함(9-11) 세계의 열국에게 광포하라고 외칩니다. 그 메세지 내용은 세계의 대전쟁을 위하여 전투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용사들을 무장시키며 군인들을 소집하라고 합니다. 또한 곡식을  심기 위해 땅을 갈아엎는 농기구인 보습으로 살상무기인 칼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리고  풀을 베고 곡식을 베는 데 쓰는 농기구인 낫으로 창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병약한 사람조차도 용사라고 외치면서전쟁에 참가하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사방의  모든 민족들이 급히 서둘러 이 전쟁터로 모이라는 메세지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군대도 그리로 내려와 이들 군대와 대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세상의 군대를 보고 있습니까?아니면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있습니까?여호와의 선언(12-13) 여호와께서 열방과 그 군대들을 부추겨 여호사밧 골짜기로 인도하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열국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재판의 현장입니다. 때가 되어 곡식을 추수하는 비유를 통해 그는 그의 군사들에게 그의 적을 쳐부수라고 명령합니다. 첫째 명령은 곡식이 다 익었으므로 낫을 들어 추수하라는 명령입니다(사17:5;계14:15).  둘째 명령은 탐스럽게  익은 포도를 추수하여포도주 틀에 넣고 밟듯이 적을 밟으라는 명령입니다(사63:1-6;계14:18-20). 이는 그들의 죄악이 크기 때문입니다. 종말론적으로 여기에 언급된 세계 대전쟁은 아마겟돈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계14:14-20,16:16,19:11-21)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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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26, 2024 2월 27일 회복과 구원의 비전, 만민에게 부으실 하나님의 영
    본문 : 요엘 2:18-32오늘의 본문은 요엘서의 전환점입니다  본문에는 온 백성들의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응답과 그의 백성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뚜기재앙으로 인한 파괴는 축복스러운 보상으로 바뀌고 침략의 위협은 승리로 반전될 것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권에 의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은혜로운 응답(18) 백성들의 진실한 회개로 주님의 진노는 자비와 사랑으로 변했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라고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백성과 그  땅에 대하여 뜨거운 사랑으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파괴도 회복시킬 수 있는 전능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향하여 여호와의 중심이 사랑과 측은함으로 타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까?  농업(땅)의 회복의 약속(19-21)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땅을 회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식물을 잘 자라게 하여 곡물을 풍성한 추수를 하게 하실  것입니다. 포도원을 회복시켜 거대한 포도송이와 포도주를 넉넉히 얻게 하실 것입니다. 올리브 나무는 탐스럽게 많은 열매를 맺어 넉넉한 기름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가 조롱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북쪽의메뚜기 군대를 막으시고 그 적의 전방에 있는 자들의 시체는 동해 바다에 넣고 후방에 있는 자들의 시체는 서해 바다에 넣어 완전한 승리를 이스라엘에게 안겨 줄 것입니다. 그리고 땅과  백성은 '주께서 큰 일을  행하셨다'하며 즐거이 외칠 것입니다.우리는 참으로 인간의 역사와 자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있습니까7  들짐승의 회복의 약속(22) 피조물의 고통은 그들 자신의 문제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은  탄식하며 영광의 회복을 고대합니다(롬8:19-22). 더이상 들짐승들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마다 열매를 맺고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저마다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굶주림으로 죽지 않고 그들이 거처할 숲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탄식하며 고통하는 피조물의 소리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의 약속(23-27) 시온의 자녀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합니다. 제사를 다시  드리게 될 것이며,이른 비와 늦은 비의 풍족한 비를  통해 모든 생필품이 넉넉해질 것입니다. 타작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칠 것이며 혹독한 재앙으로 인해 소멸된 산물은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전의 재앙으로 인한 고통은 사라지게 되고 만족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을 깨닫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백성들은더 이상 메뚜기 떼나 이방 민족이나  온 세상 앞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주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며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우주 가운데 주만이 홀로 계시며 모든 것을 회복시킬 구원의 주이시며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 구원, 기쁨, 만족함, 그리고모든 성공은 진정 누구로부터 온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7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28-29)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회복시키신후에 인간에게 가장  행복이 되는 선물을 허락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불행이라면 하나님의 영이 인간에게서 떠나는 일일 것입니다(창6:3;시51:1). 그러나이제 종말에는 하나님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 줍니다. 여기서 만민은 문자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말하나 종말론적으로는  세계의 모든 민족을 의미합니다. 왜 성령의 강림이 그토록 인류에게 큰  축복이 됩니까? 첫째,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합니다. 작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개인의 미래에 다가오는 하나님의 계획을 분별한다는 뜻이며 크게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가지신 구속의 경륜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을 통하여 장차 메시아가  와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것과 사람의 영의 눈을 열어 메시아를 보게 하시며 우리 안에 오셔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합니다. 둘째,  노인들이 꿈을 꿉니다. 노인의 특징은 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원을 바라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메시아를 통하여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 모든 진리를 깨닫게하고 받아들이게 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성령, 즉 우리 안에 계신 그 성령은 마지막 날  우리를 부활하게 하실 것입니다. 노인은 바로 이러한소망의 꿈을 꾸게 된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셋째, 젊은이가 환상을 봅니다. 외적으로는 강대국에게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그들의 눈 앞에서 적들에게 강간이나 능욕을  당합니다. 그러나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들은 살아 있으나죽은 시체와 같습니다. 불행한 현실은  그들에게 어떤 꿈도 가질 수 없게 했습니다.내적으로는 절망과 죽음뿐이었습니다. 사탄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하는 사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신이임하게 되면 젊은이는  싸울 수 있는 용기와 승리의 환상을  가지게 되며 새 역사의주인공이 되는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강림이 주는 꿈, 환상, 장래의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의 징조(30-31)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즉 종말의 날이 오기  전의 징조를 간략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는 우주의 변화와 피, 불, 연기 등의 심판의 징조가 나타날것을 예언합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기쁨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라(32)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올 때에 어떤자들이 구원을 얻습니까?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올 때를 어느 누구도 피할 수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어떤 피난처도 안전한 도피처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이스라엘에 크고 두려운  날이 왔을 때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그들의 도피처가 되지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즉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한 소수는구원을 받았습니다. 인류 종말의 날에는  아무도 살아 남은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얻으리니”(롬10:13)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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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25, 2024 2월 26일 마음을 찢는 회개, 마음을 다한 돌이킴
    본문 : 요엘 2: 1-17본문은 이중적으로 장차 임할 심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종말론적으로 보는 입장으로서 '여호와의 날'에 임할  마지막 날의 사건의 예표와 전조로 보는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는 시각으로  본문에 묘사된 대로 강한나라의 군대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역사적 심판을 의미합니다.다가올 앗수르 군대와 바벨론의 침입을 메뚜기 떼의 침입과 유사하게 언급하면서 피해의 심각성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의 임박함(1-2)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하여 강한 나라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침략자가 침입해 오고 있음을 전쟁의 나팔 소리와 호각 소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여호와의  날로서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먹구름과 어둠에 뒤덮이는날입니다. 유다 땅에 사는 백성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되는 날입니다. 까마득한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도 이런 일은 없었고 후대의 세대에도 없을 셀 수없이 많은 강한 메뚜기 군대 즉 강하고 수많은 군사를 가진 군대가 마치 어둠이 산등성이를 덮어오듯이 새까맣게 밀려 온다고 했습니다. 지금 주님이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온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야 하겠습니까(마24:29-31 ; 계22:20)?  여호와의 군대의 파괴력(3-5) 메뚜기 군대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땅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가는 곳마다 불처럼 초목을 삼키고 땅을 삼켜 에덴 동산 같은 땅을 황량한 사막으로만들고 그 앞에서 살아 남은 자가  하나도 없게 했습니다. 그 메뚜기 떼는 몰려오는말과 같고 달려오는 군마와도 같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태우는 소리와도 같습니다. 강한 군사의 함성 소리와도 같습니다.  여호와의 군대의 쉴 새 없는 공격(6-11) 여호와의 군대로 인한 두려움이 온  나라에 퍼짐으로 인해 모두가 절망하고 얼굴빛이 하얗게 변해 버렸습니다. 그 군대는 용사처럼 공격하고 무사처럼 성벽을 잘 기어오릅니다. 질서 정연하게 진격하고 행군을 합니다. 그리고 성안으로 뛰어 들어가 모든 것을 약탈합니다.  그 여호와의 군대가 전진할 때는  땅과 하늘이 진동하고 해와달과 별이 빛을 잃습니다. 이처럼 다가올 군대의 확실한 승리를 예언합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군대를 지휘하시며 그를 수많은 군인이 따르고 복종합니다. 감히 누가 그주의 날을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사실 메뚜기  떼와 군대는 동일하게 하나님이사용하는 도구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신28:38-39 ; 왕상8:35-39  ; 암4:9). 여기서그 군대의 지휘관은  바로 전능한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결국 요엘은 하나님의심판이 불가항력적이며 철저하게 진행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백성들의 살 길은 오로지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당신은 전능한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계십니까(왕하6:14-17)?진실한 회개의 요청(12-13상) 하나님은 임박한 진노 앞에 놓여 있는 백성을 향하여 다시 한 번 회개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는 부모에게 징계의 매를 맞고도 잘못을 빌지 않는 자녀를 향하여 "한 번만 잘못했다고 해라.  그러면 너를 용서해 주마"하고  사정하는 부모와도 같습니다.그래서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 돌아오라고 합니다. 형식적으로 옷만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먼저 재앙의 아픔을 경험하시며 돌아오기를 간청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는 무엇입니까?  진실한 회개의 동기(13~14) 하나님과 그의 성품에 대한 깊은 이해는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올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눅15:17-21). "여호와가  너희 하나님이시다."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기초적신앙 고백입니다. 신명기에만 260번 이상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중 그의 풍성한 자비로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동기가 되곤 했었습니다.본문에서도 요엘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다양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고 외침으로 회개를촉구합니다. 이는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여  있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중보기도하는 모세를 연상케 합니다(출32:12-14).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분이십니까?  국가적 회개에 대한 촉구(15-17)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는 전쟁의 나팔  소리가 아니라 민족적 회개로 모이도록 나팔을 불으라는 명령입니다. 이는 거룩한 금식과 성회로 모이라는 부름입니다. 이 모임은 온 백성이  거룩히 구별되어야 하며 모두가 모여야  합니다. 즉 장로, 아이들,젖먹이, 방금 결혼한 신랑 신부,  제사장들까지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나와서 회개의 성회에 참여할 것을 촉구합니다.  백성과 제사장들은 성전 현관과 번제단 사이에서 울면서 호소하라고 합니다. 그들의  기도 내용까지 가르쳐 줍니다. 첫째, 주님의자비로움으로 긍휼히 여기소서. 둘째,  주님의 소유인이 백성이 이방인에게 통치 당하는 수모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후자는 주님의  이름이 이방인에게 비웃음거리가되지 않도록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구하는 우리의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7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습니까?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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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25, 2024 2월 25일 심판 앞에서의 선택, 금식과 부르짖는 기도
    본문 : 요엘 1:13-20절선지자는 더 나아가 제사장들에게 그 자신들이 먼저 베옷을 입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성전으로 모이게 하여  성회를 선포하고 금식하며회개할 것을 강력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멸망의 날 즉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이 재앙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그리고 땅도 함께 고통하는 절망적 상황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이러한 절망적재난 가운데서도 살 수 있는 방법은 회개와 부르짖음이라고 선포합니다.  제사장들은 울라(13) 종교 지도자는 그 사회나 나라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을 향하여 통곡하며 외치고  있습니다. 즉 제사장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성전에 가서 밤을세워 통곡하라고 합니다.  또한 성전의 제단에서 수종드는  자들에게도 역시 베옷을입고 슬픔으로 밤을 세우라고 합니다. 이는 더이상 아침 저녁으로 성전에 바칠 곡식제물과 불에 태울  제물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어떤존재입니까?  거룩한 금식과 성회를 선포하라(14) 그리고 거룩한 금식을 선포하고 성회를 열어 장로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들을 불러모아 여호와께 회개하며 부르짖도록 호소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세상을 향해 선포해야 할 성회는 어떤 종류의 것입니까? 그리고 부르짖어야 할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죄와 자연의 재앙(15-20) 전능자가 보낸 여호와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메뚜기 재앙은 여호와의 날에 대한 징조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더구나 메뚜기  재앙에 이어지는 가뭄의 재앙은 그 황폐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식물과 곡식이 수분이 없어 모두 말라죽으면서 하나님께 탄식합니다. 소매와 가축  그리고 들짐승들은 가뭄으로 물이 없고 초목은 시들고 불에 타서 없어지므로 목마름과 먹을 것이 없어 죽어 가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헐떡거리며 부르짖습니다. 이 모든  탄식은 인간의 죄 즉 이스라엘의 배도와반역에 따라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재앙은 인간의 고통을 더해  주는 재앙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연을 다스리고관리하는 책임(창  1:28)을 주셨으나 이들은 어떠합니까?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창 3:17-19)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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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23, 2024 2월 24일 임박한 심판 앞에 국가적 회개를 촉구함
    본문 : 요엘 1;1-12본문은 하나님의 사람, 요엘의 호소문의 반복으로 시작합니다. 즉 귀를 막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라는 것의 반복으로 시작하여이스라엘의 후대들에게 "고할 것니라"를 세  번에 걸쳐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임할 메뚜기 재앙의 혹독함 때문인데 본문에 나타난 메뚜기 재앙은 종말론적으로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온 땅위에 장차 임할 자연적인 메뚜기 재앙과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임할 메뚜기 떼와  같은 큰 이방 민족의 침입을 이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의 호소(1-3) 요엘은 브두엘의 아들로 소개되는데 이는 그의 부친이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요엘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이라"라는뜻으로 그가 신앙의 집안에서 성장했음을 시사합니다. 그는 늙은 자들과 그 땅의 모든 거민들에게 다가오는 재앙의 참혹함과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도록 권고와 호소로 그의 메시지를 시작합니다. 여기서 늙은 자들은 경험이 풍부하고 덕이 있는 자들로 재판과 나라 일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민간 지도자들이며 거주민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아가야  할 유다 백성을 의미합니다. 또한 수사적 어법으로 시작하는 이  메뚜기 재앙에 대한 예언은  요엘의 동시대인이나 그 이전의조상들도 경험하지 못한 무서운 재앙임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것을 자녀에게 말하고 또 자녀는  그들의 자녀에게 말하게 함과 동시에 그 자녀들은그 다음 세대들에게  말하게 하여 그 무서운  재앙을 기억하고 대비하도록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간절한 호소는 무엇입니까7  연속되는 메뚜기의 공격(4) 본문은 무서운 메뚜기 떼의  공격을 수사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팟종이가 (베는 메뚜기)먹고 남긴 것을 메뚜기(떼짓는 메뚜기)가 갉아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뛰는 메뚜기)이  썰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파괴하는 메뚜기)이 말끔히 먹어 버렸다고 선언합니다. 메뚜기 침략의 연속적인 파동과 다양한 공격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의 철저함과 무서움을 보여줍니다(렘15:3).  깨어 울지어다, 곡할지어다(5-7) 그러나 어리석은 이스라엘은 술에  취하고 포도주에 빠져 정신을 잃었습니다. 선지자는 향락과 사치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이제는 그들이 깨어나서 울며 통곡하게 될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메뚜기의 침입으로 인하여 포도  농사가 망하고 모든 식물이 파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메뚜기 재앙은 메뚜기 떼같이 쳐들어오는 이방 민족을 상징합니다. 그들의  이빨은 사자 이빨과 같고 날카롭기가 암 사자의 송곳니와 같아서  포도나무를 망쳐 놓고 무화과나무의  껍질을 다 벗겨서 그줄기를 모두 하얗게 만들어 죽게  만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본 절에서 포도나무와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을 심판하셔야 했습니까?  너희는 애곡하라(8-9)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혼자를 잃고  슬퍼하는 처녀처럼 굵은 베옷을 입고 통곡하라고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더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성전에서 날마다 드리는 곡식 제물(소제)도 동나고 부어 드리는 전제도 떨어지니 성전에서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탄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긍휼을 얻기 위해서 울어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땅이 통곡하는구나(10) 땅은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이 황폐하고 토지가 말라 버려 곡식을 내는 생산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남아 있는 곡식은 메뚜기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고 인생을 즐겁게 하는 포도나무는 더이상 포도를 맺을 수 없고 매달려 있는 포도송이는 그냥 말라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리고 올리브 나무는 열매가 말라 비틀어지니 더이상 기름이 없어 땅이 애곡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의 중요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에게 드려야 할  예배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여 소홀히 드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땅은 실제로 땅일 수도 있고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종류의 통곡을 하고 있습니까?  농부들아 울라(11-12) 농부들은 슬퍼하고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들은 애곡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식이 되는 밀과 보리가 다 죽고  밭의 소산이 모두 말라 버렸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사과나무, 석류, 종려나무  등 밭에 있는 나무가 모두 말라 죽게 되어 농부와 포도원지기의 기쁨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노동의결실이 황폐케 되어 추수의 기쁨을  느끼기 보다 말라 버린 식물을 붙잡고 탄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박국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합3:17-19)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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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47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23, 2024 2월 23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민에게 전하십시오
    본문 : 막 16:9-20마가복음은 예수님의 복음전파의 명령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던 제자들에게 지상명령(至上命令)을 주시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 나타날 표적을 예언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표적을 행하는 능력이 약속되었지만, 이는 단지 복음 전파 명령에 수반되어 나타날 표적이었습니다(6:7-12). 이러한 사실은 표적 자체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지상 사역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복음 전파의 목적에 도움을 주기 위함임을 시사합니다.부활 후 나타나신 예수님(9-14)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다가 구원 받은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예수님께 헌신적이었으며 부활한 예수님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행운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증언을 듣고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부활의 신령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어 금방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두 제자는 예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제자의 증언을 듣고도 나머지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열 한 제자들조차도 쉽게 믿지 못할 만큼 부활은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꼭 지녀야 할 믿음입니다.제자들에게 주신 사명(15)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동안 이미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배신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그의 위대한 선교적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비록 실수와 허물이 많은 제자들이었지만 이 위대한 명령은 그들의 삶을 위대하게 변화시켰습니다. 구원과 정죄의 기준(16) 신약 성경에서 믿는 것과 세례 받는 것을 동시에 다루면서 세례가 구원의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지만 진정 구원받은 믿음이 있다면 자원하여 세례를 받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복음을 믿는 자와는 대조적으로 믿지 않는 자는 최후의 심판 날에 하나님께 정죄를 당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표적들(17-18) 이 구절은 믿는 자에게 따르는 다섯 가지 표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표적’은 사도들의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입증하는 초자연적 사건들입니다. 표적들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선포한 그 신앙의 확실성을 보증해 주는 것으로 복음의 사명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신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할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제자들의 사역(19-20) 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는 영광과 권위를 상징하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하심을 입어 원근 각지에 복음을 전파하는 큰 일꾼들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특히 좌절과 낭패에 빠졌던 성도들도 새 힘을 얻어 복음을 전파하므로 용기를 얻게 되었고 이 후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이방지역에까지 복음이 확장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따라서 복음 전파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계속되어야 할 위대한 명령입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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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46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21, 2024 2월 22일 사망권세를 이기신 생명의 주님
    본문 : 막 16:1-8부활 사건은 기독교에 있어서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로서 첫째는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님같이 부활하여 영생하리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고전15:12-19), 둘째는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모든 사악한 죄의 권세에 대해 승리(고전15:20-28)하리라는 소망으로 담대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을 찾는 여인들(1-4)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은 생각조차 안하고 다만 생전의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심으로 죽은 이에게 마지막 정성을 표하기 위해 새벽부터 무덤으로 향하습니다. 당시 관습상 향유를 바르는 것은 장례 절차에 따른 한 순서이지 매장하고 난 다음에 바르는 경우는 없었고 시체에 접하는 것을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던 율법을 염두에 둘 때 시신에 향유를 바르고자 하는 여인들의 태도가 얼마나 헌신적인 사랑의 표현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여인들이 열 수 없을까봐 근심하였던 육중한 무덤의 돌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무덤도 비어 있었습니다.      천사가 전한 부활 소식(5-8) 여인들로 하여금 빈 무덤을 눈으로 확인하도록 하면서, 천사는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전에 말씀하셨던 대로 갈릴리로 먼저 가셔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분부합니다. 그러나 여인들은 너무나 놀라고 두려운 나머지 그 자리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었고 아무에게도 아무 말을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 애정과 성실함을 갖고 있는 여인들이었으나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에 둔하고 무지하였기에 눈 앞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절정이며 성도의 참 신앙의 근간입니다. 우리의 삶이 현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이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할 때에 세상이 주는 모든 위협과 유혹이 일시적인 것임을 알아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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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45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20, 2024 2월 21일 하나님 아들의 죽음, 완전한 대속과 화해
    본문: 15: 33-47 예수님이 못박히신지 세 시간이 지난 제 육 시, 즉 정오가 되자 온 유대 땅에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일식 때문이라고도 하나 유월절은 만월 때이므로 이러한 현상이 일식 때문일 수는 없습니다. 고난 주간 금요일 오후에 있은 예수의 운명과 그의 죽으심으로 일어난 즉각적인 반응, 그리고 운명 장면을 목격한 백부장과 많은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를 위시한 다른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한편 예수께서 운명하는 즉시 성전 휘장이 갈라졌다는 것은 희생 제사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됨을 보여 주면서, 구약 희생을 완성시키신 그 죽음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였습니다(마27:45-56).  운명하심(33-37)  예수님이 당하고 계신 고통은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고 있는 육체적 고통이나 제자들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과 멸시를 받고 있는 정신적 고통 뿐만이 아닙니다. 온 인류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셨기에 하나님께도 외면을 당하고 있는 영적 고통까지도 겪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편22:1의 부르짖음을 빌어 이 총체적인 고통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주변에 있던 무리들에게는 예수님의 고통이 구경꺼리요 조롱꺼리에 불과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운명하시고 이로써 하나님의 구속사와 인류의 역사는 대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성소 휘장이 찢어짐(38)  성소의 휘장이란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상징적 장소인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에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둘로 갈라졌다는 것은 대제사장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육체와 흘리신 보혈로 인해 누구에게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히10:19-20). 이제 구약의 제사법은 그 효용을 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39-41)  이렇게 새롭게 열려진 은혜를 최초로 누리게 된 사람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고백한 최초의 인물이요 장차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될 수많은 이방인의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고통에 찬 죽음의 현장을 끝까지 지켜 본 자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어 오던 여인들이었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여 온 여인들이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십자가의 길을 증언할 자들이 된 것입니다아리마대 사람 요셉(42-43) 유대인의 하루는 해지는 때, 곧 오후 6시 경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의 ‘저물었을 때’는 ‘벌써 저녁이 되고 있을 때’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바로 안식일이 불과 얼마 남지 않았을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내기 위해 앞장 선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3:50-51에 의하면 그는 선하고 의로운 자로 산헤드린이 예수님의 처형을 결의할 때 찬성하지 않았던 자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7:57에 의하면 예수의 제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합니다. 삼 년 반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 했던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고 예수님께 걸었던 세상적 기대도 모조리 무너진 좌절의 현장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사회적 명망과 부귀와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길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하겠노라 나섰던 것입니다.     장사되심(44-47) 십자가에 못박힌 죄수들은 보통 이 삼일 매달려 고통받다가 죽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 빌라도가 놀란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지 여섯 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고자 아니하여 다리를 꺾어서라도 빨리 죽게 하라고 성화를 부리자 로마 군병들이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는데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후라 다리는 꺾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백부장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망을 확인하고는 순순히 요셉에게 시신을 내어주었습니다. 요셉은 고급 세마포로 예수님을 싸서 자신을 위해 예비해 두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예수께서 처형되실 때 멀리서 지켜보았던 여인들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의 시체가 매장되는 곳에까지 따라와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분명한 역사성을 증언할 증인들로써 이 여인들의 이름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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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9, 2024 2월 20일 인류의 죄 때문에 고난받은 종
    본문 : 막 15: 24-32예수의 심문 당하심이 신성(神性)을 지니신 그리스도에 대해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로마 군사의 모독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육체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는 또한 희생양으로 죽음을 당하실 어린양에 대한 구약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였습니다(사 53장). 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로마 병사들의 멸시와 모욕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비참한 대접을 받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성자(聖子) 하나님이 성육신(成肉身)하셔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대속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이 죽음은 구약의 모든 예언들과 상징들을 완전히 성취하시는 언약의 완성으로서 그 가치를 지닙니다. 이와 같이 인류를 위해 오신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죽음의 자리에 내어주기까지 섬기는 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셨습니다(막10:45).십자가에 못박히심(24-28) 간혹 예수님의 양 손바닥에 못질이 되어있는 십자가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고증에 의한 것입니다. 손은 손목의 뼈가 갈라지는 각각의 손목부위에, 그리고 발은 두 발을 포개어 중심에 못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양 손목의 못은 정중신경에 압력을 가하고, 발의 못은 양 발의 척골 사이의 신경들을 자극했기 때문에 체중이 각 손목과 발에 실릴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도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극심한 고통을 마취 음료도 거절하시고 온전한 정신으로 감내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까지 가게 되었던 구레네 시몬은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온 가족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그 이름만 대도 다들 알 정도로 초대교회 내에 잘 알려진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구경하는 자들의 조롱을 받으심(29-32) 골고다를 지나가며 구경하던 일반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희롱과 모욕을 당하신 예수님은 마지막에 함께 처형된 강도들에게서 조차 조롱과 비방을 들으셨습니다. 온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 온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당하신 것입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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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43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8, 2024 2월 19일 고난의 쓴잔을 온전히 받으신 예수님
    본문 : 막 15: 16-23 예수의 심문 당하심이 신성(神性)을 지니신 그리스도에 대해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로마 군사의 모독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육체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는 또한 희생양으로 죽음을 당하실 어린양에 대한 구약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하였습니다(사 53장). 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로마 병사들의 멸시와 모욕을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비참한 대접을 받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성자(聖子) 하나님이 성육신(成肉身)하셔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대속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이 죽음은 구약의 모든 예언들과 상징들을 완전히 성취하시는 언약의 완성으로서 그 가치를 지닙니다. 이와 같이 인류를 위해 오신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죽음의 자리에 내어주기까지 섬기는 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셨습니다(막10:45).군병들의 희롱을 받으심(16-20) 유대인의 왕을 사칭했다는 예수님의 죄목이 로마 병정들의 야수적인 흥미를 끌었습니다. 유혈이 낭자한 예수님을 놓고 잔인한 장난을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왕의 색인 자색의 옷을 입히고,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씌우고, 갈대로 홀을 만들어 들린 후 왕에게 하는 예우를 풍자하여 온갖 희롱과 모욕을 퍼붓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심(21-22) 간혹 예수님의 양 손바닥에 못질이 되어있는 십자가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고증에 의한 것입니다. 손은 손목의 뼈가 갈라지는 각각의 손목부위에, 그리고 발은 두 발을 포개어 중심에 못질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양 손목의 못은 정중신경에 압력을 가하고, 발의 못은 양 발의 척골 사이의 신경들을 자극했기 때문에 체중이 각 손목과 발에 실릴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도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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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8, 2024 2월 18일 살인자보다 멸시 받는 만왕의 왕
    본문 : 막 15:1-15예수님의 수난 주간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이 밝았습니다. 이날은 유대인들이 유월절 양을 잡고 음식을 준비하는 예비일이기도 하며, 이날 저녁부터 유월절과 무교절이 시작됩니다. 누가복음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1차로 심문하고 다시 그 신병(身柄)을 헤롯에게 인도하여 그 앞에서 재차 심문 받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눅23:8-12). 이것은 예수님에게서 특별한 정치적 혐의를 찾지 못한 빌라도가 유대인의 종교와 풍습에 익숙해 있던 헤롯에게 자문을 구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의인을 핍박함에 있어서 악의 세력은 서로 공모하여 그 죄악을 더 가속시킵니다. 재판과 판결은 공의에 입각해서 행해져야 하지만 빌라도는 공의보다는 실리(實利)를 추구하는 자였습니다.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1-5) 산헤드린공회는 더 커지기 전에 빨리 예수님 건을 마무리 짓고 싶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한 속국에 불과했기에 그들에게는 임의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해 뜰때 재판을 시작하는 로마의 관례에 따라 로마 총독의 재판을 받기 위해 새벽에 예수님을 빌라도에게로 끌고 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적 문제만으로는 죄수를 사형에 처하지 않으므로 로마에 반역을 꾀한 정치범으로 고소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고소 내용이 사실인지 예수님을 심문하고자 하였으나 예수님은 아무런 변명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죄가 있는 자라 할지라도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일진대, 무죄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빌라도의 눈에 기이히 보였다고 합니다. 빌라도와 군중(6-15) 같은 때 빌라도의 법정 밖에는 명절때마다 특별사면을 하는 전례를 따라 바라바라고 하는 한 열심당원의 사면을 요구하기 위한 무리들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무죄와 단지 산헤드린의 질투와 모함을 받고 있는 것 뿐임을 눈치챈 빌라도는 명절때의 특별 사면을 이용해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유도성이 짙은 질문을 군중들에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대제사장들이 군중들을 충동하여 예수가 아닌 바라바를 살리라고 아우성치게 만듭니다. 당황한 빌라도는 적어도 산헤드린의 요구보다는 가벼운 요구를 기대한 듯 군중들에게 재차 예수님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형에 처하라는 군중들의 요구에 매우 의아해 하면서도 혹 저들이 흥분하여 민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저들을 만족케 하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일신상의 득실에 따라 공의를 거스린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군중들은 다수라는 핑계 아래 악에게 충동받고 동조한 무지로 우리를 경계시키고 있습니다영상 :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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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6, 2024 2월 17일 오만함과 실패를 씻어 내는 참회의 눈물
    본문 : 막 14:66-72  법적으로 속개되고 있는 산헤드린의 재판에서 공식적인 사형 판결을 받으신 예수님이 무자비한 모욕과 폭행을 당하고 계신 현장에서 베드로도 뼈아픈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는 맹세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실패하는 한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스승을 부인했으며, 자기의 다짐을 스스로 어겨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후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확고한 신앙없이 환난을 견디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 부인(66-68) 체포되어 가시는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까지 들어온 베드로는 하속들 사이에 묻혀 불가에 앉았지만 혹 누가 자신의 신분을 알아볼까 무척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비자, 곧 여종 하나가 베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그 여종의 말을 부인하고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앞뜰로 자리를 옮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메시야됨을 인정하시며 의연히 죽음의 길로 나서신 반면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함으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두 번째 부인(69-70)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있는 베드로에게 더욱 의심을 품게 된 그 비자는 이번에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예수님과 한 패라고 고발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아람 방언을 말할 때 그 발음에 있어서 현저히 구별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심문을 당하고 계셨던 예수님의 제자라고 확신했고 베드로를 가리켜 “참으로 그 당”이라고 베드로를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다시 부인을 하는데 원문에는 ‘부인하기를 거듭 지속했다’는 의미인 미완료 시제로 쓰고 있어 베드로가 얼마나 강하게 예수님을 부인했는지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여기에서 첫 번째 닭이 울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부인(71-72)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이 베드로와 예수님의 관계를 추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번 반응은 단순한 부정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저주와 맹세’라는 강력한 수단을 사용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했다는 말은 그가 신성 모독적 발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는 법정에서 진술 사실을 부인하여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한 맹세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연속된 세 번의 부인으로 인해 철저히 허물어지는 실패자가 됩니다. 이 때 두 번째 닭이 울었고 이 소리에 정신을 차린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대로 철저한 실패자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심히 통곡했다고 합니다(마26:75). 이 뼈아픈 눈물을 통해 베드로는 인간의 연약함과 무지를 통감하게 되었을 것입니다.영상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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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5, 2024 2월 16일 예수님의 정체성,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본문 : 막 14:53-65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셨습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당시의 대제사장은 가야바였고,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야바에게 끌려 가시기 전 가야바의 장인이요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 예비 심문을 받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대제사장직이 종신제도였음을 미루어 볼 때 안나스가 자신의 사위에게 대제사장직을 세습한 후 종교와 정치에 깊이 관여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와 정치지도자들이 얼마나 부패해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한밤에 소집된 공회(53-54) 대제사장의 집에는 이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대의 최고 재판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로 그들이 모였다는 것은 공회가 소집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산헤드린은 낮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회의를 소집하는 것이 상례였으며 야간 재판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하는 자를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한밤에 재판하는 불법을 불사하고 있습니다.      칠 증거를 찾음(55-59) 유대 사회에서 가장 큰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이 공회에서 먼저 죄형을 정해놓고 그것을 합법화할 수 있는 증거를 찾는 어이없는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한밤중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증인들을 동원한 것을 보면 저들이 합법을 위장하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는지를알 수 있습니다. 유대법에 의하면 유죄로 판결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일치된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증언까지도 서로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빌미를 끝내 찾지 못하고 맙니다. 예수님을 정죄함(60-65) 다급해진 대제사장이 직접 심문에 나섰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트집을 잡아 보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죄를 변명해 보라는 요구에는 침묵을 지키셨지만 “메시야냐?”라는 질문에는 주저없이 그리고 명확히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밝히셨습니다. 여기서 메시야됨을 밝혀도 저들이 믿을리 없고 오히려 저들이 원하는 바 빌미가 되는 것을 예수님이 모르실리 없지만 이제 지상 사역을 완성하는 단계에서, 그동안 공식적인 비밀처럼 여겨져 왔던 사실을 명백한 사실로 공언하시는 것입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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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4, 2024 2월 15일 배반의 입맞춤, 도망가는 제자들
    본문 : 막 14:43-52 예수님께서 될 수 있는 대로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셨던 그 ‘때’, 즉 죽음의 때가 마침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때’를 기도로 준비하신 예수님과 그렇지 못한 제자들의 대조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적자들의 체포 계획(43-44) 유다의 생각에 한 밤중의 겟세마네 동산만큼 대중들의 눈에 띄지 않게 예수님을 넘겨줄 적당한 곳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로 가실 것을 안 유다는 산헤드린의 재가를 얻어서는 그들이 지원해 준 하속들을 대동하고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실수없이 체포하기 위해 군대를 무장시키고 군호를 짜고 단단히 끌어가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체포 당하시는 예수님(45-49) 스승을 죽음에 넘겨주기 위해 유다가 선택한 군호는 애정과 존경의 표시인 ‘입맞춤’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체포 당하는 예수님 곁에서 검을 휘두른 제자가 베드로라고 합니다(요18:10). 베드로는 이 때를 자신의 충성도를 나타낼 절호의 기회로 알고 충동적인 감정에 따라 칼을 휘둘렀을 것입니다. 마태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검을 사용한 자는 검으로 망한다’고 말씀(마26:52)하시면서 무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가르치셨고, 누가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칼에 떨어진 종의 귀를 고쳐주셨다고 전합니다(눅22:51). 이렇게 무력과 권력의 힘 앞에 허둥대고 있는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저들의 부당한 대우와 처사를 책망하시면서도 사태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망가는 제자들(50-52) 불과 몇 시간 전에 절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노라고 목숨을 걸며 맹세하였던 제자들이 모두 다 도망갔습니다. 인간의 자기 신뢰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여기에서 마가는 제자들을 위시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만을 홀로 남겨두고 모두 도망갔던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전후 문맥과 상관없는 독특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보통의 유대인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급 직물인 ‘베 홑이불’을 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부유한 자이며,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닌 것이 분명한 이 청년을 많은 사람들은 마가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연약함과 우매함을 아시기 때문에 결코 사람에게 자신을 의탁치 않으셨습니다(요2:22-23).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셨고 그에게 순종하셨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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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February 14, 2024 2월 14일 순종을 구하는 기도, 시험을 이기는 기도
    본문 : 막 14:32-42감람산 기슭의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님께서 기도처로 자주 이용하시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 밤을 이 동산에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심에 있어 기도를 통해 시작하셨으며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겟세마네에 이르러(32-34) 예수님은 1차 남겨 놓으신 제자들 8명에게는 단지 휴식을 명하셨지만 좀 더 당신 가까이 머물게 하신 3명의 제자들에게는 당신이 느끼고 계시는 고뇌를 호소하시며 같이 기도하여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책망(35-42) 영혼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인 인간은 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원하면서도 육이 그를 따르지 못해 실패할 경우가 많습니다. 유혹이 육체의 약함에 거점을 마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육체를 모두 긴장시켜 깨어 기도할 때에만 유혹과 더불어 다가오는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심으로 육의 욕망을 제어하고 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범, 즉 기도함으로써 시험을 이기는 모범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경고와 고뇌에 찬 기도 소리, 그리고 거듭되는 책망을 들으면서도 잠을 이길 수 없을 만큼 제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기도가 개인의 소원 성취를 위한 수단처럼 잘못 인식되어 버린 지금의 현주소를 볼 때, 우리의 기도가 오직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간구처럼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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