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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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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April 10, 2024 4월 11일 소아시아 를 가다
    본문 : 행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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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April 07, 2024 4월 08일 하나님 손에 맡긴 악인의 운명
    본문 : 왕상 2: 26-36  본문은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처단한데  이어 앞서 아도니야의 반역 사건에 가담하였던 동조자(1:7) 아비아달과 요압에게도 징벌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아비아달의 파면(26-27)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파면시키고 그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낙향시켰습니다. 이것은 요압에게 내린 징벌에 비하면 매우 관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비아달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은 그가 오벧에돔에  있던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옮길 때 그 궤를 메었을  뿐 아니라(대상15:11-15) 선왕 다윗과 함께 동고동락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삼상22:20;삼하15:24). 그러나 한편으로 아비아달의 파직은 종교인으로서의 생명을 다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아비아달이 제사장직에서  파면된 것은  패역한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삼상2:27-36, 3:12-14)의 성취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엘리 가문의 죄악과 관련하여 그 가문의 제사장직을 폐하고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아비아달은 파면되고 사독 가문이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압의 최후(28-35)  요압은 아도니야나  아비아달과 같은 자신의 동지들이  제거되었다는 소문을 듣자재빨리 여호와의 장막으로 달아나 제단 뿔을 잡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사면 받고자 도피처로 피신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아도니야의 거사에 참여했을 뿐만아니라(1:7) 오래 전부터 다윗 왕가에  위협을 주는 인물이었고 더욱이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과 지위 유지를  위하여 다윗의 뜻을 거스르고 아브넬(삼상3:27)과 아마사(삼하20:8-10)를 살해했습니다. 고의로 살인한 자에게는 도피성이나 제단의 뿔이 피난처가 될 수  없었습니다(출21:13-14;신19:11-13). 그러나 요압은 솔로몬이 성소에서 자기를 죽이지 못하리라는  생각으로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라며 버티었습니다.솔로몬은 여호와의 제단이 악한  살인자를 보호하는 곳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브나야로 하여금 그를 처형하도록 했습니다. 요압이 비롯제단의 뿔을 잡았어도 그 죄를 사면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솔로몬은 요압을 처형한 후 그를매장해 주는 예우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이어 솔로몬은 개각을 단행하였는데, 군대장관에 브나야를 임명하고 대제사장에  사독을 세웠습니다. 이때부터 대제사장 이원체제가 폐지되고 사독 계열의 일원 체제가 수립되었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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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April 06, 2024 4월 7일 하나님 뜻에 어긋난 죄에 대한 심판
    본문 : 왕상 2:26-35본문은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처단한데  이어 앞서 아도니야의 반역 사건에 가담하였던 동조자(1:7) 아비아달과 요압에게도 징벌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아비아달의 파면(26-27)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제사장직에서  파면시키고 그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낙향시켰습니다. 이것은 요압에게 내린 징벌에 비하면 매우 관대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비아달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은 그가 오벧에돔에  있던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옮길 때 그 궤를 메었을  뿐 아니라(대상15:11-15) 선왕 다윗과 함께 동고동락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삼상22:20;삼하15:24). 그러나 한편으로 아비아달의 파직은 종교인으로서의 생명을 다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징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아비아달이 제사장직에서  파면된 것은  패역한 엘리  가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삼상2:27-36, 3:12-14)의 성취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엘리 가문의 죄악과 관련하여 그 가문의 제사장직을 폐하고 새로운 제사장을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아비아달은 파면되고 사독 가문이  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압의 최후(28-35)  요압은 아도니야나  아비아달과 같은 자신의 동지들이  제거되었다는 소문을 듣자재빨리 여호와의 장막으로 달아나 제단 뿔을 잡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죄를 사면 받고자 도피처로 피신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아도니야의 거사에 참여했을 뿐만아니라(1:7) 오래 전부터 다윗 왕가에  위협을 주는 인물이었고 더욱이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과 지위 유지를  위하여 다윗의 뜻을 거스르고 아브넬(삼상3:27)과 아마사(삼하20:8-10)를 살해했습니다. 고의로 살인한 자에게는 도피성이나 제단의 뿔이 피난처가 될 수  없었습니다(출21:13-14;신19:11-13). 그러나 요압은 솔로몬이 성소에서 자기를 죽이지 못하리라는  생각으로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라며 버티었습니다.솔로몬은 여호와의 제단이 악한  살인자를 보호하는 곳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브나야로 하여금 그를 처형하도록 했습니다. 요압이 비롯제단의 뿔을 잡았어도 그 죄를 사면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솔로몬은 요압을 처형한 후 그를매장해 주는 예우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이어 솔로몬은 개각을 단행하였는데, 군대장관에 브나야를 임명하고 대제사장에  사독을 세웠습니다. 이때부터 대제사장 이원체제가 폐지되고 사독 계열의 일원 체제가 수립되었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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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April 05, 2024 4월 6일 숨길 수 없는 야망, 단호한 처벌
    본문 : 왕상 2:13-25 아도니야는 다윗을 시중들던 아비삭을 자기 아내로 삼고자 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전왕의 첩을 취하는 일은  사실상 후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아도니야는자신을 은연 중에 다윗의 후계자인 것처럼 드러내려는 악한 계교를 꾸미다가 처형당했습니다.  아도니야의 방자한 요구(13-18)  아도니야는 밧세바에게 나아가서 자신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있었는 데도 불구하고 솔로몬에게 왕위를  빼앗겼음을 탄식하였습니다. 그리고서 다윗을 시중들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의 아내로 삼을 수 있도록 솔로몬에게 청원해 줄 것을요구했습니다. 물론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한 것은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일 수도있고 이 일이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가 될 것같지 않으나 실제로는 아도니야가 은연중에 자신을 다윗의 진정한  후계자인 것처럼 부각시키려는 간교한 술책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충고를  받아 다윗의 후궁 10명과 동침했던 것도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삼하16:21-22). 선왕의 첩을 아내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왕위를 널리 인정받던  고대 근동의 관습에 의거해  볼 때(삼하16:21-22) 그의 요청에는왕위에 대한 욕망과  음모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도 하나님께헛된 것을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도니야의 죽음(19-25)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요구를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이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았기에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취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모친 밧세바에  대한 지극한 효성에도 불구하고 그 부탁을 수락하는데 따를  위험을 간파했기 때문에 이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솔로몬은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취하면 결국  정국이 혼란과 불안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험이있음을 알았습니다. 솔로몬은 밧세바의 간곡한 요청과 아도니야가 그의 형제라는 사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청원을  한마디로 거절하고 아도니야를 반역죄로 극형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행동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혈육마저도 가차없이처단하는 무자비한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솔로몬은 신정 왕국(삼하7:12-16)의통치자로서 사사로운 혈연에 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자기 욕망에사로잡혀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하는 자의 결말이 어떤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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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April 04, 2024 4월 5일 다음 세대에 전할 유언, 말씀 순종과 정의 실현
    본문 : 왕상 2:1-12   사람이 임종할 때가 되면 남아있는  유가족에게 특히 사랑하는 자식에게 길이 간직할 말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통일왕국을  세우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다윗은 자신이세운 나라를 더욱  번영케하며 강성케하도록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이유언의 내용을 하나님의 나라를 계승해야 할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알고귀를 기울여 들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힘써 장부가 되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죽음을 내다보면서 대장부처럼 용감하게 살라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어린 목동으로 아버지의 양을 지키고 있을 때 사자와 곰들이 양들을 헤치려고 하면  용기 있게 그들과 싸워서 승리하였습니다. 자신의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장부같이 용감하게 행동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셔서그를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이스라엘을 불레셋 군대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어린  몸으로 물멧돌 하나 들고 무서운 골리앗  앞에 선 일도 있었습니다. 이때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대장부처럼 싸웠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목동이었던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생애를 대장부처럼 살았기 때문에 아들 솔로몬에게 대장부가 되라고 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  자본금마저 없어질까 두려워 땅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때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고 그 있는 것도빼앗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남기기 위하여 위험 부담이 있지만 그 돈을 투자하여 다섯달란트를 남겨서 주인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칭찬을 들었습니다. 신앙은  담대함이요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강하고 담대하라는  동일한 주문을 받았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이들이 세상을정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형통하고 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유언했습니다. 이는다윗 왕의 삶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그가  하나님 말씀에 붙들려 살아갈 때 그는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했습니다.  이는 왕이나 백성이나 남자나 여자나 선민이나 이방인에게나 모두에게 진리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 고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대로 사는 길만이 어디서나 어느 때나 형통한다는 것을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면서 말씀을 중심으로 사는 신앙생활을 강조하고있습니다. 세속화된 사람들에겐 성경이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는 거침돌로 생각될지 모르나 진정한 형통은 말씀 순종에 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삼하22:31-37).  셋째, 화평을 깨는 이를 처단하라.  '... 네가 알거니와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태평 시대에도 싸움을  하고 피를 흘리는 자를처단하라는 유언입니다.  남이 나의 평안을 깨며 괴롭게 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남의 평안을 깨는 것을 즐기는 자들은 마지막 죽는 날에도 평안하게 죽지 못할 것입니다. 지도자는 나라를 평안하게, 교회와 가정을 평안하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평안하고 화목하는 것을 누리지 못하고 평화시대에도 싸움을 좋아하는 자는 그의 일생동안에 개인이나 가정에 평안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가 평안해야 부흥되고 가정이 평안해야 어린 자녀들이 영육간에 건강하게 자랍니다.  넷째, 공의가 살아나게 하라.  상벌을 확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에게는 보상을, 저주한 자에게는형벌이 임하게 하라고 유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갈 때에  망할 것같은 나라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군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물을 공급하여 위로한 바실래와그의 아들들에게는 왕이 누리는 영광을 누리게 하고 쿠데타로 왕이 쫓겨가니까 완전히 망하는 줄 알고 침뱉고 저주하고 욕한 시므이에게는 심판을 내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지상에서 예수님과 그의 세운  종들과 그의 몸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음과 물질로 위로하고 협력한 사람들을 기억하여 주님이 영원토록 왕노릇 하실 때주님의 영광에 참여 할 것을  보여 주고 있으며 지상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느라고 연약하게 보이고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무시하고 멸시한 자에게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끄러움을 당할 뿐만 아니라 내세에서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아무도 그를 돌보는 자가 없고 그들이 죽는다 할지라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할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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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7
    아름다운동산교회April 03, 2024 4월 4일 권력을 따르는 사람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본문 : 왕상 1:38-53  솔로몬은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의 노새를 타고 기혼으로 내려가 제사장사독에게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자타가 공인하는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아도니야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웠던 백성들은 이로써 안정을  찾게 되었고 이스라엘최대의 전성시대인 솔로몬 왕국 시대를 맞게 되었습니다.솔로몬의 대관식(38-39)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는 다윗의 명령대로 솔로몬을 노새에 태우고기혼으로 갔습니다. 제사장 사독은 성막에서 기름이 담겨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부었습니다. 이 '기름'은 사람이나 물건을 거룩하게 구별할 때 사용하는 관유(灌油)입니다.  이 기름은  언약궤가  보관된  성막 안에  비치되었는데(삼하6:17;대상15:1), 성막의 기름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부은 것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가 될솔로몬에게 신적 권위가 부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에게 기름이 부어진 후 양각 나팔을 불자 모든 백성들은 “솔로몬 왕 만세”라고 크게 외쳤습니다.성중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40-48)  아도니야와 그 무리들이  잔치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은 솔로몬의 대관식과 관련된백성들의 환호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때 많은 전쟁을 체험한 요압이 그 소리에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다윗 측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성중에 남았던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들어와 그때의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하였습니다. 요나단은 솔로몬의 대관식이 많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합법적이고 성대하게 행해졌다고 했습니다. 또한 왕의 대부분의 신복들도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조치를 취하자 솔로몬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그를축원하였다고 하였으며, 더 나아가 다윗이 솔로몬의 대관식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보고까지 했습니다.  아도니야와 추종자들의 도피(49-53)  아도니야의 무리들은 처음에 반역을  위해 모여들 때와는 정반대의 모양으로 흩어졌습니다. 즉 여기서 그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제 갈 길로 집으로 돌아가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과 그의 신하들이 보여준 용기와 충성 그리고 결속과 대조됩니다. 이는 곧 아도니야와  그의 무리들에게 참된 신념이 결핍되어 있었음을 드러내는 단적인 증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게 의존했던다윗과 그의 신하들은 위기가 닥쳐오면 오히려 단호한 결정과 신속한 응답을 보였지만, 아도니야와 그의 무리들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일어나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관용 및 위엄을 나타내 주고 있는 반면 아도니야는 반역에 실패하자 재빨리 제단 뿔을 잡고 목숨을 구걸하는 겁쟁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상의사실들이 우리에게 주는 구속사적 의미는 매우 큽니다. 즉 그것은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라는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통해 그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권세 아래 다스릴을 받고 있습니까?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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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6
    아름다운동산교회April 02, 2024 4월 3일 바른 선택돠 신속한 실행
    본문 : 왕상 1:28-37  선지자 나단은 다윗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충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그 당시의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게 하여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게하려는 결단을 얻어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방문함(22-23)  나단이 다윗에게 나아올 그때에 밧세바는 잠시 물러나 있었습니다.  이는 왕비든 신하든 왕의 허락이  없이는 제 삼자의 개입이허용되지 않았던 당시 궁중 예법 때문이었습니다. 나단은 다윗 왕 앞에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이는 왕에 대한 충성과 존경의 표시입니다. 아도니야의 반역을 고함(24-27) 나단 선지자는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킨  사실에 대하여 다윗 왕이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웠는지를 물었습니다. 아도니야가 왕자들과 군대 장관들과 제사장을 청한 후잔치를 벌인 자리에서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그들은 "아도니야 왕 만세"라고 불렀다고 말합니다. 이는  왕의 즉위식 때에 왕을  찬양하는 일종의 기원문입니다. 그런데아도니야에게 이러한 만세가 불려졌음은  밧세바의 말속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단이 그것을  말함으로써 아도니야의 반역 사실이  보다 확연히 드러난 것입니다. 나단은 다윗 왕에게 이같은 일들이 모두 왕이 하신 일인지를 재차 물었습니다. 다윗의 결단(28-31) 다윗은 물러가 있던 밧세바를 다시  그 앞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오늘날그대로 행하리라"라며 자신의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에 의지하여 맹세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이같은 맹세는 일생동안 자신을 지켜 주신 하나님에대한 신앙 고백적  맹세이며, 밧세바나 나단에게만 하는  맹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약속이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일종의 서약이었습니다. 즉 다윗은 솔로몬을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에  밧세바는 다윗의 결단에 의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자 처음 대할 때와 달리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혹시우리는 지금 하나님에게 했던 약속을 잊은 것은 없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할 것은 없습니까?다윗의 명령(32-35)  제사장 사독은 기름을  부어주는 자로, 선지자 나단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선포하는 자로, 군부의 실력자인 브나야는  그 예식을 경호하는 자로서 대관식을 거행하도록 다윗이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제사장과 선지자가 왕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사명자로 세웠습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다윗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왕권을 계승하도록 기름부음을 받게 한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다윗의 후계자인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대관식 때에 양각 나팔을불어 모든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아도니야의 무리들에게도 그 소리가 들리도록 하여 솔로몬의 왕위 즉위가 만천하에 공식적으로 선포되도록 명령했습니다.  브나야가 아멘으로 응답함(36-37)  브나야는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그는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함께 하셔서 다윗이다스리던 때보다 더욱 번성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브나야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솔로몬의 왕위 계승은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믿었던 신앙 때문이었으며 다윗에게 충성하였듯이 솔로몬에게도 그처럼 섬기겠다는 충성심을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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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April 01, 2024 4월 2일 바른 선택을 돕는 지헤로우 설득
    본문 : 열왕 1:11-27 아도니야의 반란을 분쇄하는 것은 솔로몬과 밧세바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함은 물론솔로몬의 즉위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나단은 아도니야의 반란을 저지할  목적으로 밧세바를 다윗에게 보내어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하나님의 뜻을 상기시켰습니다. 나단의 충언(11-14) 나단은 아도니야가 왕이 되면 그의  정적인 솔로몬과 밧세바가 심각한 위협에 처할것을 알았습니다. 나단은 밧세바에게 이때까지 아도니야의 반역을 알지 못하고 있는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나단은  전에 다윗이 솔로몬을장차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되게 하리라고 밧세바에게 맹세한 것을 재확인 시키고그 사실이 공식적으로 선포되도록 밧세바를 통해 요구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을 낳기 전, 성전  건축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미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하나님의말씀을 들었으며(대상22:9), 솔로몬을 낳은 후 밧세바에게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 대하여 맹세한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자 나단이 밧세바로 하여금 신앙의 사람 다윗이  이 약속을 회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약속과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는 것이 응답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밧세바의 간언(15-21) 밧세바는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왕의 침실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단이 아도니야의 반란을 다윗에게 직접 알리지 않고 밧세바를 통해 알리게 한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다윗 앞에 나아간 밧세바는 몸을 굽혀 왕에 대한 존경과 충성을 표하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다윗은  밧세바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물었습니다. 밧세바는 다윗 왕에게 네 가지 사항을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다윗왕으로 하여금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잇도록 하나님께 맹세한 사실을 회상하게 하였습니다. 둘째,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리라는 다윗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려고  하는 것을 왕은 모르고 있다고 했습니다.셋째, 백성들은 왕이 후계자를 선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넷째, 아도니야가 왕이 되면 밧세바 자신과  솔로몬은 숙청될 것임을 알렸습니다. 나단과 밧세바가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을 일깨워준 것 같이 우리도 약속과 서원을 잊고 사는 이들을 깨울수 있어야 합니다.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방문함(22-23)  나단이 다윗에게 나아올 그때에 밧세바는 잠시 물러나 있었습니다.  이는 왕비든 신하든 왕의 허락이  없이는 제 삼자의 개입이허용되지 않았던 당시 궁중 예법 때문이었습니다. 나단은 다윗 왕 앞에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이는 왕에 대한 충성과 존경의 표시입니다. 아도니야의 반역을 고함(24-27) 나단 선지자는 아도니야가 반역을 일으킨  사실에 대하여 다윗 왕이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웠는지를 물었습니다. 아도니야가 왕자들과 군대 장관들과 제사장을 청한 후잔치를 벌인 자리에서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그들은 "아도니야 왕 만세"라고 불렀다고 말합니다. 이는  왕의 즉위식 때에 왕을  찬양하는 일종의 기원문입니다. 그런데아도니야에게 이러한 만세가 불려졌음은  밧세바의 말속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단이 그것을  말함으로써 아도니야의 반역 사실이  보다 확연히 드러난 것입니다. 나단은 다윗 왕에게 이같은 일들이 모두 왕이 하신 일인지를 재차 물었습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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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March 31, 2024 4월 1일 인생의 순리를 인정하고 다음 시대를 준비할 때
    본문 : 열왕기상 1:1-10열왕기는 이스라엘 남북왕조의 왕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본 장은 다윗의 활약상에 대한 기록인 사무엘서에 이어 어떻게 다윗의 통치가 끝나고 솔로몬의통치가 시작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쇠한 다윗(1-4) 압살롬의 반역(삼하15:1-18:33), 세바의 반란(삼하20:1-26)에 이어 다윗의 통치 말년에 아도니야의 반란이라는 또 다른  반역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통일  이스라엘 왕국 건설의 위업을 달성한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모두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이때 그의나이는 약 70세였습니다. 그는 늙고 쇠약해져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은 젊은 처녀로 하여금 다윗 왕을 시중들고 간호하게 하였습니다. 젊은 처녀는 다윗의 품에 누워 노쇠해져  떨어진 다윗왕의 체온을 높여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같은 행위는 당시의 의술 관습으로 노쇠해진 몸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자주 사용된 치료술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원기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왕위 계승자를 공식 결정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세기의 영웅이요  용사인 다윗도 자신에게 찾아오는  노년의 한계와 연약함은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아도니야의 반역(5-10) 다윗이 노쇠하여 국사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아도니야가 돌연히 자기 부친 다윗에게 반기를 들고 차기 이스라엘  왕으로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아도니야는 살아 있는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최연장자로 왕위 승계 서열상 제1위였고(삼하3:2-5),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는 교만해져 왕위찬탈을 계획했고, 요압과 아비아달 등도 이에 동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압살롬과 같이(삼하15:1-7) 자기를 위한사조직을 만들었고 반역의  장소까지 미리 정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사전의 치밀한준비를 거쳐 일으킨 아도니야의 반란도 결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왕인 솔로몬(삼하7:12-16,12:24-25)의 즉위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아도니야의 반역은 여지없이 훼파되고 말았고, 오히려 이는 솔로몬의 즉위 시기를 앞당겨 주었을 뿐입니다. 아도니야는 왕을 세우고  폐하는 일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대상29:12). 또한 교만이 패망의  선봉임을 망각했습니다(잠16:18). 우리는 교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친 적은 없습니까?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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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March 30, 2024 3월 31일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영원히 살아계신 예수님
    본문 :  24:1-12 예수님께서 죽은지 사흘만에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과 제자들의 언동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11,12절). 그래서 천사는 아주 적절한 말로 그들의 처지를 표헌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15절).  교회 안밖에는 아직도 제자들처럼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는  사람들이한 둘이 아닙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완전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고집하는 사람들이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부활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그럴듯한 논리를 폅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도둑 맞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까무러졌다가  무덤으 냉기에 깨어났다는 소리도 합니다. 그리고 또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  그리워하다 살아계신 것처럼 착각했다는 그럴 듯한 이론을 붙이기도 합ㄴ다. 그런데  이같은 헛소리를 비단 불신자들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예수 부활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는 버룻을 가진 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신자들은  예수의부활을 죽음의 공포가 떠나지 않는 세상에서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용기와 소망을주는데 필요한 신앙적인 이야기로 치부해 버립니다. 이런 신앙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 현세 중심적인 부활신앙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아서는 안되는 몇가지 이유들을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는 생명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자기를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요11:25,26). 생명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죽음은 격코  생명의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매우 흥미있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2:24). 고래가 요나를 삼키기는 했지만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죽음이 생명 자체이신 예수를 무덤 속에 가두어 둘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에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예수는 자기가 살아날 것을 생전에 여러번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처럼 부활을 미리 말씀하신 이유는부활을 믿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이유는 부활이 어쩌다  그럴 수 있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느너데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고 무덤 속에서 예수를 찾았던 것도 주님이 사흐ㅎ만에 다시 사신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말씀을 상기시켜 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찾아서는 안될 또 하나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기록된 부활의 증거들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완벽한 것이라 깨끗한 양심과  건전한 양식을 가지고 있는 자는 도무지 부인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댕법원장이며 캠브리지 대학교 총장을 지낸 바 있는 원드버스트경은 그가 죽은 후  책상위에 남겨진 쪽지에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법관으로서 소위 말하는 법률적인 증거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부활에 관한 증거야말로 이 세계가 존속하는 한 절대로 무너지지 아니할 것이다.' 성경의 여러 증거 중에서 우리가 흘려 버리기 쉬운 증거를 한가지만 살펴  보려고합니다. 누가는 3절에서 빈 무덤에 관해서만 증거하고 있는 반면 베드로와 같이  무덤으로 달려가 현장을 혹인한 바 있던 요한은 요한복음 20:6-7에서 매우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마포가 놓였고..." 중요한 사실은 세마포와 두건의  상태와 위치입니다. 예수의 장례식은 부자의 장례식이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내려서,씻고, 세마포(부드러운 천)로 목아래 몸을 싸면서 100근이 넘는 몰약과 침향을 배합한 재료를 그 속에 채워 넣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는 두건같은 것으로 감겨져있을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도둑질을 했다면 두건과 세마포는 전부 다  없어졌거나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또 만일 예수가 까무러졌다가 깨어났다면  자기 힘으로 풀고 나올 수 있었을 까요? 그런데 요한이 본 바로는 고스란히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개켜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예수는 부활하였으되 세마포를 풀어주어야만 일어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그런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하고도 신령한 몸으로 살아 나셨던  것입니다. 마치 나방이 된 번데기 남겨 놓은 꼬치 모양. 그래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본 제자들은 "믿더라"(8절)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코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를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 분의 생명을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머지 않아 우리는 그와 함께 죽음이 완전히 정복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가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사셨은즉 우리  역시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새 몸으로 덧입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보시기 바랍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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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2
    아름다운동산교회March 29, 2024 3월 30일 십자가의 죽음으로 확증된 사랑
    본문 : 로마서 5:6-11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당신은 W. W. J. D.라고 새긴 팔찌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이 팔찌는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What Would Jesus Do?)”라는 질문을 떠오르게 합니다. 몇년 전 미시간주 홀랜드의 한 청소년 반에서 챨스 셸든이 쓴 고전 "그의 발자취"라는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그 책의 주제가 되는  질문이 성도들에게 생각나게 하도록 W. W.  J. D. 팔찌를 만들자는생각을 해냈습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 때에 이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보다 더 기본적인 또  하나의 질문을 해보아야 할필요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W. D. J. D.(What Did Jesus Do?)-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나?하는 질문입니다.삶에서 W. W.  J. D.의 질문을 던지기 전에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반드시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는 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흠없이 결백하셨지만 그분  자신이 우리의 죄를 몸소 지시려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는  유일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예수님이 무엇을 행하셨습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비록 우리가 W. W. J. D.의 좌우명에 따라 온전한 삶을 살아보려 할지라도 예수님의 희생이 없이 천국에 갈 만큼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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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1
    아름다운동산교회March 28, 2024 3월 29일 의인이 이룬 완전한 속죄, 제자 됨의 용기
    본문 :  눅 23:44-56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를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한 결의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유대인이 두려워 자신이 예수님이 제자임은 숨겼습니다. (요 19:38)이후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보며 더는 숨어 있지 않고 빌라도에게 예수님 시산을 요구하는 의로운 행동을 합니다.제자는 마음으로만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실천적 신앙으로 그 나라를 꿈 꿉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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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0
    아름다운동산교회March 27, 2024 3월 28일
    본문 : 눅 23: 33-43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인생에 구원이 임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는 예수님을 통해 나라가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그래서 모든 사람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무능한 존재로 볼때,  그는 오히려 예수님께 자기 영혼을 부탁합니다. 강도의 회심은 예수님이 하신 용서의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구원은 뜨거운 기도나 열광적 예배를 통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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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9
    아름다운동산교회March 26, 2024 3월 27일 하나님의 아들을 구해야 하는 데....
    본문 : 눅 23: 13-25 예수님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 바라바'라는 이름의 뜻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무리들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님 나들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나들을 구했습니다.이는 사람의 죄된 본성과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자기중심성에 빠지면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보다 다른 사람이 더 크게 보입니다.불신자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찾지만, 신자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예수님을 찾습니다. 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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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동산교회March 25, 2024 3월 26일 기도하시는 예수님
    본문 : 눅 22:39-53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간구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모든삶 속에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며  살아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결집된 기도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교회가 전심으로 추구하는 바가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  교회는 교회를 운영해 나감에 있어서도 순간순간 도우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기 보다는 제도와 방법과 계획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일에 실패한 결과입니다. 단지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이름값을 하고있다고생각한다면 그것은 실로 바보같은  자기만족입니다. 우리를 거룩한 자신의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예배하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림으로써 어두운 세상에서 의의 길을 걷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느낌이 아니라 실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볼모로 잡아 우리는 안전하고 평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실제로 살아있는 기도를 통해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에 합당하게 조정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더라 (눅22:44)http://qt.swim.org/user_utf/life/user_print_web.php 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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